윤진민 2023. 12. 4. 15:55

아가, 밥 먹었어? 요 며칠 추위가 살짝 누그러지긴 했는데 엄마 마음의 추위는 여전하구나. 가끔 '생활중 이상무!'라는 생존신고라도 좀 해다오. 
 
최근에 본 스우파2 에서 어떤 댄서가 춤 때문에 자기 인생이 찬란해졌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,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. 본인의 인생에 '찬란'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?
엄마가 젊고 잘 나가던 시절, 예쁘고 날씬했던 시절에도 나는 감히 찬란이라는 단어를 내게 붙일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말이야. 그 말을 듣는데 내가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더라. 내가 그 댄서만큼 내 삶을 사랑하지 않았나 봐.

영화채널에서 '더 컨덕터' 라고 여성지휘자에 관한 영화를 봤어. 남자만 지휘자가 될 수 있던 시대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, 어찌 보면 뻔한 성장스토리였지. 엄마가 평소에 TV 볼 때 채널을 쉬지 않고 계속 돌리면서 보는 습관이 있는데도 이 영화를 끝까지 끊지 않고 봤어. 영화가 끝나고 이유를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빛나서였던 것 같아. 눈이 부시는데도 계속 보고 싶은 느낌이었달까?
사람이 매번, 매 순간마다 빛날 순 없겠지만 가끔은 빛나게 살 수는 있지 않을까... 가장 최근에 내가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봤어.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,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느끼기에 나는 언제 빛이 났을까?
 
최근에 엄마 우울증이 다시 도져서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야. 그래서 그런지 그 좋아하던 맥주도 맛이 없어졌어. 한강물이 마르면 말랐지, 엄마집에 맥주와 파스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정도인데... 살을 빼라는 신의 계시인가?
자식 보기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, 천천히 희미하게라도 빛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.
아가, 빛이 나기 시작하면 엄마 마음의 겨울도 끝이 날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