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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옛적에
윤진민
2023. 10. 23. 13:10
아가, 밥 먹었어? 아침저녁은 많이 쌀쌀해졌는데 감기 조심하고. 캡슐 유자차를 보내줄까 하다가 네게 먼저 물어보려고 일단 보류했어.
며칠 전 출근길 버스에서 똑 닮은 단발머리 모녀 커플을 봤어. 애기가 네다섯 살 정도로 보였는데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더라고. 엄마가 조용히 시키려고 애썼지만 실패했지. 애기가 나중에 작가가 되려나 봐.
네가 그맘때, 남는 벽걸이 달력을 장난감으로 주고 숫자랑 요일을 몇 번 가르쳐줬더니 바로 깨우치더라. 매년 요일이 하나씩 미뤄진다고 네가 알려줘서 깜짝 놀랐었어. 그래서 엄마는 너의 천재성을 키워주기 위해 덧셈뺄셈을 가르치기로 맘을 먹었지.
아가, 네가 과자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엄마가 하나를 더 줬어. 그럼 몇 개야?
- 두 개!
그렇지! 근데, 엄마가 하나를 더 주면 몇 개야?
- 세 개!
역시 내가 천재를 낳았어! 이번엔 뺄셈이다!
아가, 세 개 과자 중에 엄마가 하나를 먹으면 몇 개가 남지?
- 엄마 먹지 마요.
아니, 진짜로 먹는다는 게 아니라 만약에 먹는다고 하면?
- 내 과자 먹지 마요. (울먹울먹, 입술 삐죽)
미안해, 아가. 내 맘대로 너를 천재로 몰아가려 했구나 반성하고 얼른 새 과자봉지를 뜯어 네 손에 쥐어줬지.
그리하여 두 모자는 오래오래 사이좋게,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.
..... 정확히는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겁나 싸우기 전까지 사이좋게 살았다고 합니다.